국회와 정부가 이번 임시국회에서 산재보상 기금과 산재예방 기금의 통합을 추진하고 있다. 그에 따른 논리는 기금의 잠식 및 누수를 방지하겠다는 것이지만 이는 선진국에 비해 월등히 높은 우리 노동자들의 산업재해 발생율을 감안해 볼 때 분명 잘못된 발상이다.
결론적으로 노동자의 안전과 생명을 다루는 산업안전보건의 문제는 기금의 경제적인 운영측면이 아니라 하나뿐인 생명을 다루는 인간존중 이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국회와 정부가 추진하려는 산재예방기금의 통합문제는 다음의 몇가지 차원에서 볼 때 통합을 통해 얻는 것보다는 오히려 잃는 것이 더 많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기금통합으로 얻어지는 이익에 비해 산업재해 발생의 증가로 인한 손실이 엄청나게 클 것이다. 노동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번 양기금의 통합은 기금의 지출보다는 수입을 확대하려는 경영을 통해 산재예방사업의 위축을 가져오게 될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산업재해의 증가를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둘째, 산업재해 문제는 사후보상적인 차원에서 접근할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산재예방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는 근본적인 문제해결의 접근방식을 사전예방 차원에서 접근하느냐, 아니면 사후보상 차원에서 접근하느냐에 있다. 사후보상 차원은 근본적인 문제를 외면하고 땜질 처방식의 소극적인 대처방법일 뿐이지만 사전예방 차원은 근본적인 문제를 극복함으로써 기반을 튼튼히 하여 제2, 제3의 문제까지도 해결할 수 있다.
셋째, 국내 산업재해의 실상을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현재까지 우리나라는 산업재해 후진국이라는 꼬리표를 떼어내지 못했다. 지난 한해만도 우리의 산업현장에서는 2500여명의 노동자가 자신의 희망을 채 꽃피우기도 전에 산업재해로 희생되었으며 6만9000여명이 다치거나 부상을 당했다. 이는 일본이나 미국, 독일 등 선진국에 비해 4배 이상 높은 것이다. 더욱이 노동부가 밝힌 산재은폐 건수만도 한해동안 2654건으로 99년보다 3배 이상 늘어난 점을 생각해 볼 때 산업재해가 우리의 노동자들의 생명을 얼마나 위협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넷째,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기본권을 외면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산업현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은 각종 위험에 노출되어 있으며 우리는 이러한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노동자들이 이러한 위험요인을 제대로 알고 그 위험을 어떻게 예방할 수 있는지 등의 사전지식을 충분히 습득하고 이해함으로써 자신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번에 추진하고자 하는 양 기금통합은 이러한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는데 역행하는 정책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개혁은 잘못된 것을 바로 잡는데 그 목적이 있다. 하지만 불합리성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추진하는 개혁은 지금까지 우리사회에 만연되어왔던 것처럼 가진 자의 횡포이자 오만으로 밖에 볼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산업재해로 인한 경제적 손실만의 경우 한해 7조원 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현실을 생각해 볼 때 당장의 경제논리에 매달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우를 범하지 않게 되기를 바라며, 양 기금의 통합보다는 각 기금의 운영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함으로써 올바른 개혁, 성공한 개혁으로 역사에 기록되기를 바란다.
현정부는 출범때부터 우리사회의 정의를 실현하는 개혁을 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그런데 노동자의 생명을 보호하는 산재예방기금을 통합하겠다는 발상에 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개혁을 한다는 말이 한낱 공언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